생애 최초로 받은 글쓰기 교육인 “원고지 정서법”에서, 대화형 인용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배웁니다.
대화는 딴 줄을 잡아 쓰되, 전체를 한 칸씩 들여쓴다.
원고지 정서법이라는 것이 어문규범도 아니요 권위있는 표준안이 있는 것도 아니며, 그 연원으로 생각하면 인쇄 문화의 태동기(1920–30년대)에 출판인쇄산업과 글쓰기 직업군(주로 ‘기자’) 사이에서 형성된 일종의 “업계표준”의 전통으로부터 비롯되었고, 현재는 교육적 목적의 임의규정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는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굳이 이를 따라야 할 이유가 별로 없기는 합니다.
게다가 컴퓨터로 글쓰기가 주류가 된 현재 상황에서 예컨대 워드 프로세서로 글을 작성하려 하는 때에 인용문이 나올 때마다 문단 전체에 대하여 Ctrl+뭐시기를 눌러가면서 문단 폭 들여쓰기를 실행하거나 문단 스타일을 별도로 적용하는 것은 실로 피곤한 일일 것이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.
그런데, 놀랍게도 초중고 국어 교과서는 이 조판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. 다음 그림은 현행 국어 교과서 중의 하나인, 이성영 외 지음, 《고등국어》 (천재교육, 2015), 52페이지의 일부입니다.
인용문을 들여쓸 필요가 있을까?
조판의 관점에서 직접 인용은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.
영미의 유수한 스타일 가이드를 보면 위의 3과 같은 경우 그 대화가 여러 문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. 대화 내의 문단에는 모두 시작하는 따옴표(여는 따옴표)를 두고, 대화가 끝날 때까지 닫는 따옴표를 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. 그러나 이 스타일은 우리말 서식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. 즉 열기만 하고 닫지 않는 인용문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.
이런 상황에서 “여러 문단으로 이루어진 대화형 인용문”을 조판하기 위해서는 한 주체의 발화를 여러 개의 따옴표 문단으로 쪼개어야 하는데 이것은 약간 불합리하다는 느낌을 줍니다. 닫는 따옴표가 주체의 발화의 종료를 의미한다고 할 때, 이미 끝난 말에 이어지는 새로운 따옴표 인용 문단은 다른 주체의 발화로서 이해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.
이를 피하기 위해서 닫는 따옴표를 여러 문단이 이어진 후 마지막에 붙이게 되면 대화와 본문의 식별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겨납니다.
즉, “여러 문단으로 이루어진 발화”를 인용하는 경우에, 왼쪽 1컬럼을 비우는 인용문 조판 방식이 독서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.
대화형 인용문의 여는 따옴표
앞서 보인 천재교육 교과서의 예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.
이렇게 조판되어 있는데요, 사실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이 하여야 올바르다고 봅니다.
왜냐하면, 인용문 내부에서 문단이 나누어질 때 두 번째 이후 문단의 첫 글자 시작 위치가 흐트러지기 때문입니다. 두 번째 보기와 같이 조판하여야 인용문 내부 여러 문단을 가지런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.
문단 첫 글자의 시작 위치는 조판의 관점에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은 “교과서가 잘못 되어 있다”고밖에 말할 수 없겠습니다.
LaTeX에서
이를테면 dialogue라는 list 환경을 하나 만들어서 모든 대화를 이 안에 넣도록 하면 간단히 구현할 수 있겠습니다. (1) leftmargin은 1em을 추가합니다. (2) listparindent는 1em으로 하되 첫 토큰이 여는 따옴표라면 left overlap합니다.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면 위에 장황하게 말한 바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.
그런데 대화를 뭔가의 환경 안에 넣는 것도 귀찮아서 이것을 좀더 자동화해보고 싶었습니다. 첨부 파일은 그 테스트의 일부 결과입니다. 유니코드 여는 따옴표([U+201C])에 대하여,
유니코드 따옴표는 에디터의 “스마트 인용부호” 기능으로 간단히 입력할 수 있습니다.
샘플은 memoir의 adjustwidth 환경을 이용하였으므로 현재는 oblivoir/memoir에서만 동작합니다.
KTUG 한국 텍 사용자 그룹